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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고통 속에 깨달은 멋진 삶
이 름 이지민
작성일 2015년 2월 25일 조 회 3772
첨부파일 없음
내 용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이 벌겋게 부어 올랐고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따갑고 아팠다. 누군가가 내 머리를 내리치듯이 머리도 아팠다. 그냥 몸살이겠거니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아팠다.
침대에 누워서 죽겠다며 살려 달라고 몸부림을 쳤다. 이런 딸을 봐야만 하는 어머니는 아픈 내보다 마음이 더 찢어졌을 터이다. 어머니가 오셔서 한 마디 던지신다.
"지민아! 방에 불빛은 보이제? 엄마는 니 낳을 때 눈 앞이 깜깜하더라. 불빛 보이만 아픈 축에도 안 낀데이."
거실에 나와 뒹굴며 발악을 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떼를 쓰며 원망했다. ‘글라라(Claraa)’라는 예쁜 세례명을 갖고 있는 24년여 된 천주교 신자이지만, 너무 아프니 그런 거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하느님! 왜 저한테만 이리도 무거운 십자가를 지워주시는 겁니까? 아파 죽 겠어요. 저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런다는 말 이제 안 믿을래요. 저도 이제 하느님 말도 안 듣고 제 맘대로 살 겁니다. 어릴 때 교통 사고라는 크나큰 고통을 주셨으면서, 또 이리도 큰 아픔을 주실 게 뭐랍니까? 책임지세요.” 울고불고 난리를 떨었다.
본디 수고하지 아니하고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없다고들 말한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은 열매를 거두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거두기 위한 것으로만 열매가 맺지는 않는다. 길쌈과 각종 수고가 있을 때 기쁨의 열매를 맺게 된다.
평화를 가져오는 평안의 가치는 전쟁의 비참함을 통해서만이 배울 수 있다. 더욱이 우리가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죽음이 우리 곁에 실재하기 때문이다. 기나긴 장마는 햇볕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가뭄의 목마름은 단비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다. 현재의 고난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한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햇살이 따가운 어느 날,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기막힌 사실을 보고 가슴이 멍해졌다. 실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빛에게 고통이 있다는 것, 그 고통이란 것이 어둠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데에 적잖이 놀랐다.
빛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색깔을 주려고 얼마나 고통을 견뎌내야 했을까? 봄과 여름에는 강과 산과 숲에 나무와 풀잎들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변하면서 우리에게 신선함과 새로움을 준 것이 빛의 고통이었다 한다. 어쩌면 이번에 내가 겪은 고통이야말로 나무와 풀잎들처럼 내 삶에 아름다운 빛을 만들기 위한 결정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다. 내가 고통에 괴로워하며 울부짖는 것도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에 이마저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이 세상 모두가 빛의 고통이 없다면 제 고유한 빛깔을 낼 수 없듯이 이 세상에 사는 우리도 고통이 없다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다.
만물이 색채를 가진다는 것은 바로 '고통의 빛'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 삶에 고통이 있다는 것 또한 내가 인간으로서 건강하고 보람찬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스친다. 날마다 우리에게는 미처 생각지 못한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다. 이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인다면 고통이 고통으로 힘겹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소중한 빛으로 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경수를 보면 소나무가 뒤틀린 모습으로 서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아,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한다. 그런데 이 소나무는 식물학자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질 않고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이렇게 보인다고 한다. 왜냐하면 원래 소나무는 쭉 뻗어서 자라는 것이 정상인데, 기후와 풍파를 겪으면서 몸이 굽고 뒤틀린 것이다. 뿌리가 제대로 뻗지 못하니까 몸부림을 치면서, 균형을 맞추면서 만들어낸 종합 작품인 것이다. 고통의 산물이라 하면 지나칠까. 그런데 이 소나무는 고통을 겪어서 ‘기형 소나무’가 되었건만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찬탄한다. 왜 그런 말을 붙일까? 아마도 우리가 공감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도 고통을 겪고 나면은 지혜도 쌓고 깨달음도 얻게 되듯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고통을 선용할 때 고통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 고통이 엄습할 때 당장 우리는 피하고 싶다. 그러나 고통을 긍정적인 눈으로 보고 “이것을 견디면 나는 업그레이드된다. 나는 탈바꿈한다. 나에게는 새로운 지혜가 생긴다.”고 생각하면 아마 고통에 대한 내 자세도 바뀌지 않을까 싶다.
이 세상의 모든 예쁜 색채들도 ‘빛의 고통’을 통하여 아루어 진다는데 보잘 것 없는 내가 ‘고통’으로 인간이라는 아름다운 색채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라며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다음의 시가 조금의 위로라도 되었음 하는 바람일 뿐이다.


◆고통이 오면 -이지민-◆

우리는 어려움이 닥치면
피하는 길은 없는가 하고
나만 하필이면 당해야
하는지 하면서 쉽게 포기할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현재의 나의 잘못을 돌아보고
나를 세우기보다는 팔자타령이나 하면서
곧잘 허물어집니다

고통이 오면
고통을 직시하고
그래 한번보자 하는 각오로
나를 세우면
고통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통이 오면
고통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즐거움이 온다는 것을 알면
고통이 와도 두렵지 않고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고통도 남이 지어서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이라면
못받을 것도 없습니다

심어 놓지 않은 인연(因緣) 없으며,
뿌려 놓지 않은 결과가 오는 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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